눈처럼 보이는 ‘그것’은 내가 있던 곳... 그러니까 가상 세계와 지금 내가 있는 곳인 현실 세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멍하니 듣다가 고개를 내려 내 몸을 보니 내가 기억하던 나의 모습과 달랐다. 훨씬 얄쌍한 다리, 근육 없는 팔, 입고 있는 흰 환자복 같은 것에 보이지 않았지만 몸도 상당히 마른 것 같다.
모든 것이 가짜다. 내가 기억하던 모든 것이.
‘그것’의 이야기로는 날 깨운 이유가 이 건물 안에 문제가 생겼으며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왜 나일까. 왜 하필 나일까? 난 이런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왜 하필 나지?”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생각한 것을 ‘그것’에게 말했다.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 분석한 결과 당신이 적임자임이 판별 되었기 때문입니다. 」
기준이 대체 뭐였는데?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그것이 다시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A, 지금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을 알지만, 당신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생활과 부, 명예는 보장해 드릴 것입니다. 다시 가상 세계로 돌아가실 때 현실 세계의 존재에 대한 기억도 없애 드릴 것을 약속 드리겠습니다. 」
누군가에겐 솔깃한 제안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건강, 부, 명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 눈앞에 펼쳐졌던 그 아름답다 생각했던 세상이 그래픽 쪼가리였다니. 내 삶 전체가 부정 당한 셈이다. 내 기억도 업적도 모든 것이 다.
그 순간 나는 상자 안에서 불렀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생각났다.
“B, B는 어디에 있지?! B를 만나게 해줘!!”
「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다. 아마 몇 번이고 애원해도 같은 답을 해줄 것 같았다. 설마 B조차 가짜인 것은 아닐까? 내 모든 인생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J도? 우리 부모님도?
「 ...A,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인류를 구하는 일입니다. 부디 협력해 주십시오. 」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무미건조하지만, 여태까지와 다른 간절한 듯한 목소리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며 들어서 의문을 갖지 않았지만, 나에게 몇 번이고 도움을 청하는 눈 모양의 저것은 대체 무엇일까.
“... 넌 대체 누구야?”
「 제 이름은 스와르그, 신 인류를 위한 온라인 가상 세계 '낙원'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AI입니다. 」
(스토리텔러 : 박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