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1] 20xx : 순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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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아니,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대충 그 정도 지난 듯 했다. 식사를 20번 정도 했으니.

 

 배를 곪는 나를 지켜보던 AI가 링겔과 모양이 똑같은 팩을 이곳의 먹을거리라며 건네주었다. 맛은 정말 링겔을 마시면 이런 맛이겠거니 싶은 시고 단맛이 느껴졌다.

 가상 세계의 모두가 이것으로 식사하지만, 가상 세계에 있으면 뇌가 조정되어 맛이 평범한 음식처럼 느껴진다고 AI는 말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이곳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내가 들어있던 상자와 똑같이 생긴 상자가 기계팔에 의해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상자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AI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닦달이라도 받아오는 건지 말을 더듬으며 자신들을 도와줄 생각이 아직 없냐고 물어본다. 잘 생각해 보니 저것은 가끔 자신을 가 아니라 라고 칭할 때가 있었다. 무슨 차이지?

 

 말 상대는 AI뿐이고, 휴대전화도 없으니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AI가 나에게 부탁하는 일이 인류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여기서 누워만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제자리에 일어서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도와줄게. 내가 뭘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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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 박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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